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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남 산청여행/"산은 산이요 물은 물이로다'라는 법어를 남기신 성철스님 생가와 겁외사

윤 중 2013. 2. 21. 05: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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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남 산청여행/성철스님생가/겁외사


1912년 4월 경남 산청에서 장남으로 태어나고

소학교를 졸업 후 자치통감을 배우면서 한문문리를 터득한 후

다른 이에게 더 배우지 않았다는 성철대종사

 

1936년 가야산 해인사로 출가하여 하동산 스님을 은사로 수계득도 하였다

1939년 도를 깨친 이후 파계사 성전암에서 행한 10여 년의 장좌불와
(長坐不臥)와 동구불출(洞口不出)이 세간에 희자되었다

 

1967년 해임총림 초대방장에 임하였으며 1981년 1월에 대한불교조계종

제7대 종정에 추대되어 '산은 산이요 물은 물이로다(山是山 水是水)라는

법어를 내려 온국민의 불심을 일깨웠다

 

1993년 11월 4일 새벽 해인사 퇴설당에서 제자들에게

"참선 잘하라" 는 말씀을 남기고 세수 82세 법랍 58년의

세연으로 열반에 드셨다.



 


이영주라는 인간으로 이땅에 태어나서 오직 진리를 향한 구도심으로 모든 것을 버리고

부처의 길을 선택한 성철스님, 그 분은 평생 산중에서 청렴한 수행자로 살다간 우리 시대의

대표적 산승이고 선승이며 불교의 정신을 깨닫고 온몸으로 실천한 철저한 수행승이었다.
성철스님의 생가터에 전시관과, 시간 밖의 절이라는 겁외사(劫外寺)를 지어

그 가르침을 영원히 기리고자 한다.

 



 

성철 대종사의 동상과 뒤에는 생가이고 왼쪽에는 겁외사가 있다




성철 대종사 생가로 들어가는 혜근문





가운데가 안채이고 좌측이 전시관인 포염당이며

오른쪽은 사랑채인 율은재이며 큰스님의 생가를 복원하여

선친의 호를 따라 율은고거(栗隱古居)라 이름 지었다.





사랑채인 율은재(栗隱齋)
사랑채는 강직한 성품으로 성리학과 한의학에 밝았던 부친 이상언 옹이

거처하던 방의 모습을 재현하였다.





안채인 율은고거(栗隱古居)
안채는 온돌방, 대청, 부엌이 있는데, 왼쪽방과 대청은 올곧은 수행정신을

체험할 수 있는 공간으로 구성하고 오른쪽 방과 부엌은 모친 강상붕의 소박한

사랑이 느껴지도록 하였다.





 

성철스님이 30여 년을 지내신 해인사 백련암 염화실 방의 모습이다.

매일 새벽예불을 하면서 백팔참회를 하실 때마다 바라보셨던

석굴암 부처님 사진, 평생 사용하신 낡은 책상, 잠시 흰구름을 벗삼아

쉬실 때 앉으시던 등받이 의자, 한여름의 따가운 햇살을 피하기 위해

쓰시던 삿갓 등, 스님의 체취가 가득 담긴 일상적인 물건이다.





성철스님의 모친 강상봉 님이 생활하던 방의 모습을 간단하게 재현하였다.

성철스님을 잉태하고 있는 동안에 늘 반듯하고 큰 것만을 골라드시고

한번도 모로 누운 적이 없었다고 한다.

책읽기를 좋아하였고, 시간이 날 때마다 아이들에게 위인전 이야기를

들려 주었다고 한다. 성철스님 출가 후에는 모친도 참선 정진을 하여

임종시에 "화두가 있느냐" 고 물으니 고개를 끄덕이며 편안한 모습으로

눈을 감으셨다고 한다.

정면에 보이는 이층장과 궤는 모친이 사용하시던 것으로 낡아서 없어진

장식들을 손질해서 놓은 것이다.





전시관인 포영당(泡影堂)
유품전시관에는 속인시절의 모습에서 열반에 이르기까지 성철스님의

체취가 고스란히 남아 있는 유품과 유필을 모아 전시하였다.





1천 6백년의 유구한 역사를 지닌 한국불교사에서 그 유래를 찾아볼 수 없는 일이

1993년 11월 4일 가야산 해인사에서 일어났다

다 헤어진 누더기 한벌과 검정 고무신, 불교의 핵심사상를 간추려 놓은 낡은 노트와

메모지들을 남긴 채 우리곁을 홀연히 떠난 성철스님

그 열반에 세계의 이목과 온 국민의 관심이 집중되었다

다비식을 마친 후에야 비로소 우리는 그 분이 우리와 함께 숨쉬며 살다간

부처였음을 알아처렸다.

 

 


 


삼서근(麻三斤)
화두(話頭) 또는 공안(公案), 동산수초(洞山守初) 선사가 삼서근을 인용해서
부처님을 어디서나 나타날 수 있다는 것을 알게 한 것이다

「벽암록(碧岩錄)」12칙에 있다.

공안에는 1천 7백여 가지 화두가 잇는데, 이 삼서근은 기념관을 방문하는

분들에게 내리는 성철스님의 화두이다.

 

 


 

한결같이 신으셨던 검정 고무신




전법게(傳法偈)
용성스님이 금강산 장안사 선원에서 정진하고 있는 동산스님에게

법을 부촉하는 게송을 지어 보낸 편지이다.

이심전심으로 법을 전하던 선가의 전통을 엿볼 수 있는 귀중한 자료이다.




이영주라는 속인의 옷을 벗고 "성철'이라는 법명으로

세속의 모든 인연을 끊고 수행자의 길을 출발하였다.




단성초등학교에 보관되어 있는 초등학교 6년 동안의 생활기록부





합천 해인사의 성철 대종사 사리탑

성철스님의 사리를 모신 이 사리탑은 통도사 적멸보궁을 기본형으로하여

우리나라 전통 부도의 아름다움을 현대적 조형언어로 새롭게 해석한 것이다

(2011, 09 월에 여행시 찍은 사진입니다)




지리산 겁외사(智異山 劫外寺)의 입구이자 누각인 벽해루




성철 대종사 생가 앞의 지리산 겁외사는
"상대유한의 시간과 공간을 초월한 절' 이라는 의미를 지닌 겁외사는

산청군의 협조와 불필스님의 원력으로 2001년 3월 30일 창건되었다.





성철대종사생가/지리산겁외사

경남 산청군 단성면 묵곡리 210

055) 973-161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