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청여행/산천재/남명 조식 선생
조선 중기의 유명한 유학자인 조식 선생의 유적지이다.
조식 선생은 많은 벼슬이 내려졌으나 모두 거절하고,
학문연구와 후진양성에 평생을 보냈으며
72세로 일생을 마친 후 영의정에 추증되고
문정이란 시호가 내려졌다.
조식 유적은 두 곳으로 나뉘는데 사리(絲里)에는
산천재, 별묘, 신도비, 묘비가 있고,
원리(院里)에는 덕천서원과 세심정이 있다.
산천재는 선생이 학문을 닦고 연구하던 곳으로
명종 16년(1561)에 세웠고, 순조 18년(1818)에 고쳐졌다.
이곳은 남명(南冥) 조식(曺植) 선생이 61세 때부터 돌아가실 때까지
학문을 연구하고 제자를 양성하던 장소이다
명종 16년(1561)에 세웠고, 순조 18년(1818)에 고쳐졌다
규모는 앞면 2칸, 옆면 2칸이다
산천(山天)이란 「주역(周易)」대축제로,
"굳세고 독실한 마음으로 공부하여 날로 그 덕을 새롭게 한다"는
의미를 담고 있다.
선생은 천왕봉이 바라보이는 이곳에서 국왕에게 세 차례 글을 올려
국가와 사회의 기강을 바로잡을 곳과 백성을 위한 정치를 할 것을
건의하였다
(사적 305호)
산천재에서 본 서북쪽으로 높이 치솟은 지리산의 천왕봉
남명 조식 선생 사적지 입구의 벽화
산천재 앞의 남명매(南冥梅)
이 매화나무는 남명 조식 선생이 61세에 천왕봉이 바라보이는 이곳에
산천재를 짓고 뜰에다 심은 것이라 전한다
기품있는 모습은 선비의 기상을 잘 나타내고 있다
세상 사람들이 남명매라 부른다.
우연희 읊다
작은 매화 아래서 책에 붉은 점 찍다가
큰소리로 요전을 읽는다
북두성이 낮아지니 창이 밝고
강물 넓은데 아련히 구름 떠 있네
산천재의 장판각
서원에서 장판각은 목판을 보관하고 장서각은 서적을 보관하는 곳이다
남명선생 영전에 내린 선조 대왕의 제문
남명선생 시비
산청 남명 조식 선생의 유적지 입구
조선 중기 학자 남명(南冥) 조식(曺植 1501~1572) 선생은 경상좌도의 대학자
이황과 같은 시대에 살면서 경상우도를 대표하는 유학자로 그와 쌍벽을 이루었다.
"알지 못하는 것을 걱정하지 말고, 실행하지 않은 것을 걱정하라"던
남명 조식 선생의 유적지의 건물 내부로 들어갑니다
사성현 유상 병풍을 봉안하던 곳에 걸어둔 현판
신명사 도
왕실에서 하사한 오경에서 백 편을 뽑아 만든 책
남명선생이 선현의 말씀 중에서 뽑아 모은 것을 문인이 편집한 책
남명선생의 시문집
남명선생이 쓴 오언절구의 한시
여재실
남명선생과 정경부인, 숙부 인의 위패를 모시고
후손들이 제사를 지내는 가묘이다
산천재, 산청 남명 조식 유적
경남 산청군 시천면 사리 466
055) 970-64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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