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 행/전라도

전북 무주여행/세계문화유산인 조선왕조실록과 왕실의 족보가 보관된 적상산 사고

윤 중 2012. 11. 26. 05: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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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재답사/무주여행/적상산 사고(赤裳山 史庫)

 

 전북 무주...

무주라 하면 무엇이 제일 먼저 생각나시는가요?

덕유산의 무주구천동 계곡

무주스키장

신라와 백제의 국경관문인 나제통문

반딧불이가 살아 숨 쉬는 청정환경인 무주 반딧불축제,,,

 

붉을 적(赤), 치마 상(裳)자를 써서 적상산(赤裳山)

붉은 단풍에 감탄해서 여인의 붉은 치마와 같이 아름다운 산이라는 

한국 100경 중 하나인 명산이자 산새가 험하여 쉽게 오를 수 없는 

천혜의 요새로 국난이 있을 때마다 백성을 구해준 중요한 산이지요

 국보 제151호로 지정됐고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된

조선왕조실록과 왕실의 족보인 선원록이 300여 년 동안 

보관되던 곳으로 1992년 양수발전소 건립으로 수몰되었다가

현재는 복원된 사고지를 방문해 봅니다.

 

 

 

 

임진왜란이 끝난 뒤 실록을 정리·편찬하여 5부를 완성하고,

춘추관·마니산·태백산·묘향산·오대산에 각 1부씩 보관했다.

 이 가운데 북쪽에 있는 묘향산사고를 만주에서 일어난 후금(後金:淸)과의

관계가 악화하자 다른 곳으로 옮겨야 한다는 의견이 대두하였다.

1610년(광해군 2) 무주군에 있던 적상산성을 수리하고 1614년

실록전을 건립해 1633년(인조 11)까지 묘향산사고의 실록을 모두 옮겼다. 

 

 

 

 

 

 

적상산 사고(赤裳山 史庫)는 역대 왕조의 실록을 보관하던 곳으로

선원전과 실록전을 두었다. 

북방의 후금세력이 확장되어 이를 대비하고자 묘향산 사고에 있던 왕조실록을

1610년(광해군 6년) 천혜의 요새인 이곳에 실록각을 건립하면서 옮기게 되었고

1910년 일제에 병탄된 후 조선왕조실록이 규장각으로 옮기면서

황폐해졌고 1992년 양수발전소 상부 댐 공사로 본래의 사고가

물에 잠기게 되어 현재의 자리로 유구가 옮겨졌으며 1998년 실록각 등이

복원되어 현재에 이르고 조선왕조실록과 왕실족보 복제본을 제작 전시되었다. 

 

 

 

 

 

 

 입구에 들어서서 좌측의 적상산사고 선원각

 

 

 

우측의 적상산사고 실록각

 

 

 

조선왕조실록 편찬

조선왕조실록은 국왕이 죽은 후 임시관청인 실록청을 설치하여

편찬·간행하였다

춘추관에서 시정을 정리한 「춘추관시정기」, 승지들이 그날그날의

일을 기록한 「승정원일기」, 전임시관들이 각자 보관하고 있던

「가장 사초」등이 기본자료로 이용되었다. 

 

 

 

 사고 수호(史庫 守護)는 사찰을 중심으로 이루어졌다

적상산 사고에는 안국사와 호국사를 두어 승려들이

군사와 함께 사고를 수호하였다.

사고의 전반적인 관리는 참봉이 하였고

화재를 방지하기 위해 사고에 방화벽인 돌담 장을

설치하였으며 방습시설을 갖추었다.

 

 

 

실록 포쇄(實錄 暴灑) 

 포쇄는 책의 습기를 제거하고 충해를 막기 위한 것으로 바람을 쐐고

햇빛에 말리는 것이다. 이때 사고 건물, 실록의 보관 상태 등도

점검하고 보수하였다.

 중앙에서 파견된 사관 주관하에 3년에 한 번 정도 포쇄가 행해졌다.

포쇄에 필요한 인원은 각 읍에서 뽑아냈다.

 

 

 

 

조선왕조실록 전시대 

 

 

영조실록

영조 4년 1월 을묘 2번째 기사로 적상산 사고 포쇄에 관해 기록되어있다

(우측 페이지, 앞에서 2번째 줄) 

 

 

현종 개수실록

현종 15년 2월 무신 세 번째 기사로 무주현을 부로 승격시키는

내용이 실려 있다(좌측 페이지 끝에서 7번째 줄) 

 

 

적상산 정상분지의 적상호이지만 발전용으로 사용하는 댐이기도 하다 

 

 

 

 

 

적상산 사고

 전북 무주군 적상면 북창리 산117-5

 관광안내소 063) 320-252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