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 행/경상도

안동여행/건축의 감동적인 미학 병산서원과 만대루

윤 중 2013. 3. 13. 05:59
728x90

문화재답사/안동여행/안동 볼거리추천/안동 병산서원

 

안동 병산서원(安東 屛山書院)

 

병산서원은 원래 안동 풍산현에 있던 풍악서당으로 풍산류씨

 교육기관이었고 1572년(선조 5) 류성룡이 현 장소로 옮겼으며

1607년(선조 40) 류성룡이 타개하자 후학들이 1614년(광해군 6)

존덕사(尊德祠)를 세워 류성룡의 위패를 봉안하고 병산서원으로 개칭하였다

 

병산서원은 예로부터 선현 배향과 지방 교육을 담당해 많은

학자를 배출한 곳으로 1868년 홍선대원군의 서원 철폐령 때에도

남아 있던 47개의 서원 중 하나이며
 
건립 당시의 건물이 그대로 보존되어 있어 조선 중기의

건축 양식 연구에도 중요한 자료의 사적 260호이다.

 

 

 

 

 

 

휴식과 강학의 복합공간인 만대루에서 본 병산서원의 입교당
입교당(立敎堂)"가르침을 바로 세운다" 라는 뜻으로

병산서원의 가장 중심이 되는 건물이며 원장과 유생들이 모여서
강론을 했던 자리이다


 

 

 

 

 

병산서원(屛山書院)으로 들어가는 정문인 복례문



 

 

 

솟을대문으로 세워진 정문인 복례문(復禮門)을 거쳐서 병산서원으로 들어간다


 

 

 


정문인 복례문에서 본 만대루(晩對樓)
정면 7칸 측면 2칸의 직사각형으로 건축된 팔작지붕의 누각이며

이 누각에서 바라보는 전면의 낙동강과 병산(屛山)의 풍경을 보노라면

강과 산으로 수놓은 일곱 풍의 병풍을 펼쳐 놓은 듯 아름답다.

 

 

 

 

 


 

병산서원의 중심건물이자 입교당에서 본 만대루와
아름다운 낙동강과 병산의 경치를 함께 조망할 수 있다 

입교당의 좌우에는 유생들의 학문을 닦으며 기거하던
동재와 서재가 마주 보고 있다.

 


 

 

 



 

 

 

만대루는 휴식과 강학의 복합공간으로서 200여 명을 수용하고도 남을 장대한 누각이다
만대루의 2층 누각은 사방이 시원하게 넓고 통나무를 깎아 만든 계단,
휘어진 모습 그대로 서 있는 아래층의 나무 기둥 등이 아름답기 그지없다

 주춧돌과 자연스러운 기둥에서부터 만대루에 오르는 큰 통나무로 만든

나무 계단과 천장을 보면 자연의 신비함이 우러러 보인다

 

 

 


 

병산서원(屛山書院)은 조선시대 유학자이자 정치가인 서애 류성룡(1542~1607)을

기리는 서원으로서 고려 때부터 사림의 교육기관으로 풍산현에 있던 풍악서당이었던

것을 선조 5년(1572)에 류성룡이 지금의 자리로 옮겼고, 1607년 류성룡이 타개하자
정경세 등 지방 유림이 뜻을 모아 광해군 6년(1614)에 존덕사를 세워 위패를 봉안하였다.

 

 


 

병산서원(屛山書院) 현판
철종 14년(1863) 임금으로부터 병산(屛山)이라는 이름을 받아

서원으로 승격하였고 일제강점기에 대대적으로 보수했고 강당은 1921년에,

사당은 1937년에 각각 다시 지었다. 선현 배향과 지방교육을 담당하여

많은 학자를 배출하였으며, 고종 5년(1868) 홍선대원군의

 서원철폐령 때에도 남아 있었던 47개의 서원 중 하나이며,
한국 건축사에 있어서도 중요한 유적이다.

(사적 260호)

 

 

 


강당의 동쪽 방인 명성재(明誠齋)는 원장이 기거하던 방이고
서쪽(사진의 정면)인 경의재(敬義齋)는 교수와 유사들이 기거하던 곳으로

현대 학교의 교무실에 해당한다.


 

 

 


병산서원 여러 곳에는 수백 년이 넘는 배롱나무가 있는데

꽃이 피면 아주 장관일 듯싶다


 

 


 

사당인 존덕사(尊德祀)로 오르는 계단으로 올라왔지만 평소에는 굳게 잠겨 있으며
봄과 가을 음력 3월과 9월의 초정일(初丁日)에 춘추향사제 때에만 열린다.


 

 


지붕이 없는 달팽이를 연상하는 뒷간



 

안동 병산서원

경북 안동시 풍천면 병산리 30

(하회마을에서 낙동강 상류 방향 도로를 따라 약 6Km 지점)

054) 858-5929

주차 및 무료입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