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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여여행/백제의 아름다운 숲이 잘 보존된 부소산성과 백화정

윤 중 2012. 7. 14. 05: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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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소산성/백화정(百花亭)

 

부여 부소산성 북쪽 금강 변의 낙화암 정상부에 있는 육각의 정자건물이다.

1929년 당시 군수 홍한표의 발의로 부풍시사라는 시우회에서 세웠다

백화정이란 이름은 중국 소동파가 해주에 구향가 있을 때 성 밖의 서호를 보고

지은 강금수사백화주(江錦水樹百花州)라는 시에서 취한 것으로 보인다 

 

이곳은 부여 외곽을 감싸고 도는 백마강과 주변의 낮은 산들이 어울려

내려다보이는 풍광이 아주 일품이어서 마치 한 폭의 산수화를 대하는 듯하여

 부여를 찾는 관광객이면 반드시 들리는 명소이기도 하다.

(충남문화재자료 제108호)

 

 

 

백제 멸망 당시 절벽에서 떨어져 죽었다는 궁녀들의 원혼을 추모하기 위해

1929년에 지은 부여 부소산성 내 북쪽 백마강변의

험준한 바위 위에 자리잡고 있는 정자이다. 

 

 

 

 

백제 시대의 산성이다. 부소산의 정상과 능선을 따라 쌓는 테뫼식산성과

골짜기를 포함해서 넓게 감싸는 포곡식 산성이 복합된 산성이다

(사적 제5호)

 

 

 

 

 부소산성은 백마강 남쪽 부소산을 감싸고 쌓은 산성으로 사비시대의 산성이다.

웅진(지금의 공주)에서 사비(지금의 부여)로 수도를 옮기던 시기인

 백제 성왕 16년(538)에 왕궁을 수호하기 위하여 쌓은 것으로 보인다.

성곽의 형식은 산봉우리를 중심으로 빙 둘러싼 테뫼식과 다시

그 주위를 감싸게 쌓은 포곡식이 혼합된 복합식 산성이다.

동·서·남문 터가 남아 있으며, 북문 터에는 금강으로 향하는

낮은 곳에 물을 빼는 수구가 있던 것으로 보인다.

 

성 안에는 군창터 및 백제 때 건물터와 영일루·사비루·고란사·낙화암 등이 남아있다.

성 안에 군창터와 건물터 등이 있는 것으로 보아, 유사시에는 군사적 목적으로 사용하고,

 평상시에는 백마강과 부소산의 아름다운 경관을 이용하여 왕과 귀족들이

즐기던 곳으로 쓰인 듯하다. 이 산성은 사비시대의 중심 산성으로서

백제가 멸망할 때까지 수도를 방어한 곳으로 역사적 의의가 있다.

(문화재청) 

 

 

 

 

 

 

 부소산성의 숲은 제3회 아름다운 숲 전국대회에서

"22세기를 위해 보전해야 할 아름다운 숲'으로

선정되어 우수상을 수상한 숲입니다

 

 

 

 

 

 

 

 

부여 부소산성에서 가장 높은 위치에 자리 잡고 있는 누각으로,

이곳은 달 구경을 했다는 송월대가 있던 자리이다.

 조선 순조 24년(1824)에 군수 심노승이 세운 것으로,

 조선 시대 임천의 관아 정문이었던 배산루를 1919년에

이곳으로 옮겨 짓고는 사비루라 이름 하였다.

  앞면 3칸·옆면 2칸 규모의 2층 누각으로 사방이 개방되어 있으며,

오른편 북쪽 칸에는 2층으로 오르는 계단을 만들었다.

지붕은 옆에서 볼 때 여덟 팔(八)자 모양인 팔작지붕이다.

건물 앞면에는 조선 후기 의친왕 이강이 쓴 ‘사비루’라는 현판이 걸려 있고,

 백마강 쪽으로는 ‘백마장강’이라는 현판이 함께 걸려 있다.

 

 

 

 

 가까이 자라는 두 나무가 맞닿은 채로 오랜 세월을 지나면

서로 합쳐져 한 나무가 되는 현상을 연리지라 한다

일명 사랑나무라 한다.

 

 

 

 

 

백화정과 오른쪽의 낙화암 천년송 

남부여국 사비성에 뿌리내렸네 칠백년 백제역사 오롯이 숨 쉬는 곳

낙화암 절벽 위에 떨어져 움튼 생면 비바람 눈서리 머금고

백마강 너와 함께 천 년을 보냈구나 세월도 잊은 그 빛깔 늘 푸르름은

님 향한 일편단심 궁녀들의 혼이런가 백화정 찾은 길손 천년송 그 마음

 

 

 

 

 백제 멸망 당시 절벽에서 떨어져 죽었다는 궁녀들의 원혼을 추모하기 위해 1929년에 지은 정자이다.

‘백화정’이란 이름은 중국의 시인인 소동파의 시에서 따온 것이다.

부소산성 북쪽 백마강변의 험준한 바위 위에 자리 잡고 있다.

건물 구조는 육각형 평면을 가진 육모 지붕으로 꾸몄다.

마룻바닥 주변에는 간단한 난간을 설치하였고,

 천장에는 여러 가지 연꽃무늬를 그려 놓았다.

 

 

 

 

 

오른쪽 멀리에는 백마강교가 보인다 

 

 

 

 

 

 유유히 말없이 흐르는 금강

 

 

 

 

 

부소산성 안의 낙화암은 연합군이 쳐들어오자 궁녀들이 치마를 뒤집어쓰고

 강물에 몸을 던져 죽었다 하여 타사암(墮死岩)이라 부르던 것을

훗날 강물에 떨어지는 궁녀들을 꽃에 비유하여 낙화암으로 바꿔 불렀다고 한다.

 

 

 

 

부여 부소산성, 백화정

충남 부여군 부여읍 쌍북리 산4

041) 830-252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