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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포여행/일본에 수탈당한 걸 잊으면 더 크게 또 당한다 - 목포근대역사관

윤 중 2013. 3. 1. 05: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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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포여행/동양척식주식회사/목포근대역사관

 

오늘은 뜻깊은 삼일절(三一節)입니다

1919년 3월 1일에 일어났던 삼일 운동의 독립정신을 계승하고

 민족의 단결을 굳게 하며 국민의 애국심을 함양하기 위해 제정된

우리나라 4대 국경일의 하나인데도

대형 할인매장인 이마트의 한 지점에서는 공룡체험 학습을 홍보하면서

대가리에 든 것이 있는지 "지루한 3· 1절"이란 문구를 썻다지요

 

일제 강점기 내내 조선을 경제적으로 착취하는 대표적인 기업인

동양척식주식회사의 잔재 건물은 전국적으로 목포와 부산, 대전이

남아 있으며 오늘 소개하는 목포 근대역사관으로 개장한 건물은

부산보다 남아 있는 건물이 크고 건물의 양식이 잘 보존되었으며

1920년대 건물로는 유일하다 해서 다녀왔습니다. 

 

 

 

일제강점기 조선 7대 총독 미나미 지로가 쓴 팔굉일우(八紘一宇) 비석

팔굉일우」는 고노에 후미마로 총리가 1940년 시정방침연설에서

'황국의 국시는 일우하는(전 세계를 하나의 집으로 만드는) 국가의

정신에 근거한다" 고 말한 것에서 유래되었으며, 일본 제국주의

침략전쟁을 합리화하기 위하여 내세운 구호였다.

 

이 비석은 1940년 10월 27일에 목포여자중학교 국기 게양대 앞에

세웠다가 해방 후 땅에 묻은 것으로 추정되며 2011년 11월 12일

목포여자중학교 운동장 토취 공사 중 발견하였다.

 

 

 

일제의 조선 수탈 전진기지인 동양척식주식회사 목포지점 건물이고

지금은 목포 근대역사관으로 이용 중입니다

건물의 양식은 르네상스 양식이며 1920년 지어진 건축양식으로는

유일무이하다는 것이 큰 가치라 합니다

한국역사의 자각의식을 불러일으키는 일제 침략의 실증적 유적으로서

도지정문화재 지방기념물 제174호로 지정되었다



이 건물의 수많은 곳곳에는 일본을 상징하는 태양문양이나 벚꽃문양 등

안팎에 징그러울 정도로 셀 수 없이 일제의 잔재가 숨어있으며

역사적, 문화적 가치 때문에 재평가 작업이 이루어지고

1999년 11월 20일 문화재로 지정되었다.



 두 비석은 구 일본영사관 뒤편에 파묻은 것을 복원공사 중에 발굴하고 이곳으로 이전한 것입니다

비석의 내용은 임진왜란 때의 활약상을 소개한 비석으로 왜놈들이 화풀이로 당시의 영사관

뒤에 몰래 묻어둔 것이라고 전해집니다
아주 나쁜놈들...

 


 

목포의 과거와 현재를 보며... 미래를 준비한다


 

벌거벗은 유달산과 앞에는 삼학도가 선명하게 보인다

 

 

 

목포가 개항 후 상업도시로 발전하면서 상인들이 모여들었고 이들을 위한

상업자금이 필요하여서 일본의 제일은행이 1898, 10, 1 목포출장소로

처음 설치되면서 1906, 9월은 십팔은행 목포지점, 나가사키저축은행 대리점,

 1909년 한국은행 목포출장소, 목포금융조합, 호남은행 목포지점 등이 설치되었고

수탈기관으로 악명을 떨쳤던 동양척식주식회사 목포지점은 1920년에 들어왔다.


 

수탈을 목적으로 하는 동양척식주식회사 목포지점장이 준 쌀 다수확 경작 3등 상장

현재의 나주시 이창동 나도진에게 수여했다.

 


강제수탈을 위해 세운 국책회사이자 착취기관인 일본 노무쉐키들의

동양척식주식회사가 사용하던 금고 원형대로 보존되어 있다
일제 강점기 당시에 전국 8곳에 이르는 동양척식주식회사 지점 중

소작료를 가장 많이 거둔 곳이 목포이기도 하다

 

 

 

목화의 고장 목포(朝鮮陸地棉發祥之地)

유달산 밑의 고하도에서 우리나라 최초로 목화의 대표적인 한 품종인 육지면(陸地棉)의

 1904년 재배를 기념하기 위하여 1936년 면화재배 기념사업회에서 건립하였고

원형은 고하도 이충무공 비각 옆에 있다. 

참고로 목면시배유지(木棉始培遺址)는 경남 산청군에 있으며

공민왕 12년(1363) 고려 사신으로 원나라를 찾은 문익점 선생이

목화 씨앗을 붓뚜껑으로 들여와서 재배에 성공하여 전국적으로

보급 또는 전파한 것으로 알고 있으나 육지면과의 관계를

더 자세하게 설명을 하지 못한 점은 양해 바랍니다.

 

 


 

 

선원전(璿源殿)에서 직무를 보기 위해 겨울 복장을 하고 인정전 궁궐로

나서고 있는 서거 전날 모습이다.



한국의 마지막 왕족 영친왕(1897년생)



안중근 의사 유언(1910)

일본 헌병에게 가혹한 고문과 심문을 받았지만 사형 전날까지 애국충정으로 당당했다.
사형 2일을 앞두고 여순감옥에서 마주 보고 대화하는 사람은 프랑스 신부 홍석구이고

두 동생 정근, 공근이 왼쪽에서 유언을 지켜보면서 침묵을 지키고 있다.

 

 


 

독립군 처형현장(1937)

심한 고문으로 오른쪽 항일병은 눈덩이가 부어 눈을 뜨지 못하고 있다.

당시 체포된 항일병들은 모두 중국 복장이다.



항복문서 받는 맥아더 장군

이렇게 항복까지 했는데도 또...

욕심이 발동하는지 요즈음 하는 수작이 심상찮다
부글부글

 

 


 

2층에는 일본노무쉐키들의 잔혹한 만행을 보여주는 사진이 무수히도 많습니다

온몸을 묶는 고문형틀과 고문에 사용된 도구 그리고 

한국인을 지휘하기 위하여 일본천왕이 사령관에게 하사한 칼

차마 입에 담지 못함은 물론 글로써 남기기가 무섭네요

노약자와 임산부는 조심하라는 문구가 있을 정도의 악랄하고 

잔인한 방법이 동원되었으니깐요...

 

 

 

건물과 사진만 볼 것이 아니라

진정으로 정신 재무장이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목포 근대역사관

 전남 목포시 중앙동 2가 6번지

 061) 270-872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