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 행/충청도

충남 서산여행/백제 시대에 창건하고 천여 명의 승려가 있었다는 대사찰 서산 보원사지

윤 중 2012. 10. 12. 05: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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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재답사/서산여행/서산 보원사지(瑞山 普願寺址)


백제 시대에 창건되었다고 전하는 보원사의 옛터로 통일신라~고려 초에

크게 융성하였고 왕사, 국사를 지낸 법인 국사 탄문이 묻힌 곳이며

주변에 100개의 암자와 1,000여 명의 승려가 있었다고

전하는 대사찰이었다.

이 절터에 신라 시대와 고려 시대 작품으로 추정되는 대형 철불 2구가

있던 것을 중앙 박물관에 전시 중이며 1967년도에는 백제 시대 작품으로

추정되는 금동여래입상이 출토되는 등 유물로 보아 당시에는 매우

융성했음을 알 수 있고 백제와 신라, 고려 초 불교미술의 연구에

귀중한 자료가 되는 사적지이다.
(사적 제316호)


 


사찰에 불교행사가 있을 때 불기나 괘불을 걸기 위해 만든 당간지주
(보물 제103호)



 


서산 보원사지는 102,886㎡ 규모로서 1987년도에 사적으로 지정되었으며

현재 발굴작업 중이어서 보물로 지정된 주위는 산만하고 일반인의 출입이

제한되어서 관람에는 쉽지 않더군요


 


유물로는 백제계의 양식 기반 위에 통일신라와 고려 초의 석탑양식을 갖춘

5층 석탑, 통돌을 장방향으로 파내어 만든 한국 최대의 석조,

975년(광종 26)에 법인국사가 입적하자 광종의 지시로 세운 보승탑,

법인 국사가 생애가 기록된 보승탑비, 사찰에 불교행사가 있을 때

불기나 괘불을 걸기 위해 만든 당간지주 등 보물이 현재 있다.

 



 

2006년 3월부터 현재까지 6차 조사 중이며 그동안 여러 장소에서는

현존하는 가장 오래된 백제 불상으로 평가되는 금동여래입상, 철조여래좌상,

 고려 철불좌상, 김댕이미륵불 등의 불상은 국립중앙박물관에 보관 전시 중이며

기와류, 자기류 등 수많은 유물이 출토되었고 현재도 귀중한 유물을

조심스레 발굴 중이다.

 


 

 당간(幢竿)을 지탱하기 위해 세운 높이 4,2m의 화강암으로 만든 석조물이다

당간은 절 앞에 세워 부처나 보살의 위엄과 공덕을 표시하고 사악한 것을 내쫓는

의미가 있는 당()이라는 깃발을 다는 깃대이다.

 

양식으로 보아 통일신라시대에 만들어진 것으로 추정되며 원래의 위치에 놓여있다

마주 보고 있는 두 지주의 안쪽에는 아무런 장식이 없으며 바깥쪽에는 양쪽

가장자리를 따라 돌대가 돋음 새김 되어 있다.

기단부가 없어진 것을 화강암으로 새로 보강하였는데 주위에 흩어져 있는

여러 가지의 석재들을 보 원래는 직사각형의 기단부가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보물 제103호)

 


보원사지 5층석탑(普願寺址 五層石塔)
통일신라~고려 초의 전형적인 석탑양식이다. 목조탑파에서 석조탑파로 변환하는

과정의 형식이며 아래층 기단에 사자 상을, 위층 기단에 8부 중상을 새긴 것이 특이하다.

기단부의 우주, 탱주를 세웠고 탑신부 1층 밑에 받침돌 한 장을 끼워 넣은 것과

옥개석의 몰매가 팽활하며 끝이 살짝 들어 올려진 것 등이 백제계 양식이다.

또한 옥계석 받침을 4층으로 한 것은 신라계 양식을 가미한 것으로 백제지역에

신라 이후 세워지는 석탑의 공통된 양식이다.

 

이 탑은 전체적으로 미려하고 경쾌하며 안정감이 있다. 상륜부에는 긴 찰주만

남아 있지만 1945년 광복 전까지 아름다운 복발, 양화, 보륜, 보개, 수련, 용차,

보주 등의 부재가 완전하다고 한다. 1968년 해체 복원 시 사리 내갑, 외장, 사리병,

납석소탑 등이 출토되어 부여박물관에서 전시 중이다.

화강암의 높이 약 9m이다

(보물 제104호)

 


기단부 아래는 사자상


 

기단부 위층의 8부 중상

 

 


개심사(2, 5km)로 넘어가는 서산아라메 길


 


보원사지 법인 국사 보승탑과 보원사지 법인 국사 보승탑비


 


보원사지 법인국사 보승탑(普願寺址 法印國師 寶乘塔)

법인국사의 사리를 모셔놓은 975년에 건립된 화강암으로 만든 높이 4,7m의 부도 탑이다

법인국사는 신라말~고려 초의 고승으로 법호는 탄문이다.

 

900년(신라 효공왕 4)에 출생하여 15세에 장의산사에서 계(戒)를 받았으며, 968년(고려 광종 19)에

왕사, 974년(광종 25)에 국사(國師)가 되어 이곳 보원사에 와서 975년(광종 26)에 입적하였다.

당시 임금인 광종이 슬퍼하며 부도를 세울 것을 지시하며 국공(國工)에 의해 세웠다.

 

이 탑은 팔각원당형의 형태이며 중대석의 조각은 매우 아름답고 상대석인 난간 형태를 두른 것이

보기 드문 특징이다. 옥개석에 3단 벋참을 둔 것은 부도나 탑을 막론하고 이 지방에서 보기 드문

형식이며 추녀, 서까래까지 살짝 들어 올려져 날렵한 것 등은 탑에서와 같은 백제계 양식의 특징이다

(보물 제105호)

 

 



법인국사 보승탑의 아래와 위



보원사지 법인국사 보승탑비(普願寺址 法印國師 寶乘塔碑)

법인국사의 탑비이며 978년(고려 경종3)에 경종의 지시로 세워졌다

비몸 높이 230㎝, 폭 115㎝, 글자 수 5,000여 자나 되는 거 비이며 국공을 파견하여 이들이 세우게 했다.

법인국사는 신라말~고려 초의 고승으로 법호는 탄문이다.

900년(신라 효공왕 4)에 출생하여 15세에 장의산사에서 계(戒)를 받았으며, 968년(고려 광종 19)에

왕사, 974년(광종 25)에 국사(國師)가 되어 이곳 보원사에 와서 975년(광종 26)에 입적하였다.

 

 역대 왕들과 가까웠으며 국가 시행 불사를 도맡아 시행하였고 특히 광종은 왕권 강화 작업기간

이후 정신적인 지주로서 왕사, 국사로 가까이 있게 했으며 입적하자 매우 슬퍼하였다.

이분은 학승으로 제자가 많아 말년에 보원사에 올 때 선, 교승 천여 명이 영접했으며

이곳을 고산(故山)이라 하고 여기에 와서 묻혔다.

이것으로 보아 어렸을 때 이곳에서 수도하였던 것으로 보인다.

(보물 제106호)

 

 


 

 

 

 

법인국사 보승탑비의 다양한 각도에서 본 아름다운 모습


 


보원사지 석조(普願寺址 石槽)

화강석의 돌을 파서 만든 것으로 절에서 물을 담아서 쓰던 용기이다.

안쪽과 위쪽만 정교하게 다듬고 바깥쪽은 거칠게 다듬은 것으로 보아

땅에 묻어두고 사용했던 것으로 보인다.

 

아무런 장식을 하지 않아 간결하고 소박해 보이지만 거대한 크기로

인해 웅장한 느낌을 주고 있다.

내부에도 아무런 장식이 없으며 밑바닥은 평평하고 한쪽에 물을 내보내는

구멍이 있을 뿐이다.

 

현재 남아있는 것 중에서 가장 큰 석조이다. 통일신라 시대의 일반적

양식을 따르고 있으나 978년(고려 경종 3년)에 제작된 보원사

법인국사 보승탑을 비롯한 다른 석조물들과 관련지어 볼 때

고려전기에 만들어진 것으로 추정된다.

외측 길이 350cm, 폭 180cm, 높이 90cm

(보물 제102호)

 

 

 

잠자리가 도망도 안 가면서 사랑을 속삭이네요^^



서산 보원사지

충남 서산시 운산면 용현리 48

041) 660-254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