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 행/충청도

충남 서산여행/국내 현존하는 읍성으로 가장 잘 보존된 서산 해미읍성

윤 중 2012. 10. 9. 05: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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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적지 답사/서산여행/서산 해미읍성

 

조선 시대의 읍성. 해미읍의 중심지이자, 군사적 방어 요충지였다.

 이 지역은 고려 말부터 왜구의 출몰이 잦아 피해가 막심했던 곳으로

 대책 마련을 위해 조선 태종 17년(1417)에 축조 사업이 시작되었고,


  세종 3년(1421)에 이르러 완성되었다.

 

일제강점기를 지내며 폐허가 되었는데, 1974년에 동문과 서문의

복원을 시작으로 현재까지 3곳의 문과 객사 2동, 동헌 1동,

망루 1개소가 옛 모습을 되찾았다.

 

서산 해미읍성의 총 길이는 1,800m이고 성벽의 높이는 4.9m로서 

 안쪽은 흙으로 내탁되었으며 성벽 상부 폭은 2.1m 정도이다.

성문은 동·서·남·북 4곳에 있는데 네모지게 잘 다듬은 무사석(武砂石)으로

쌓았으며, 주 출입구인 진남문은 아치모양의 홍예문으로 이루어져 있다.

(문화재청)

 

 

 

관아에서 집무를 하는 모습의 재현

 

 

 

 

 

서산 해미읍성의 정문인 진남문(鎭南門)

 

 

 

 

진남문을 안쪽에서 본 모습

 

 

 

 

서산 해미읍성의 외곽

 

 

 

 

 

 

서산 해미읍성의 총 길이는 1,800m이고 높이는 5m 정도이며

내부면적은 약 6만 평 정도의 대규모입니다

 

 

 

 

정문인 진남문 위에 있는 큰 북

 

 

 

 

진남문에서 좌측으로 본 모습

성벽의 상부 폭은 약 2,1m이다

 

 

 

 

 

서산 해미읍성 내부는 약 6만 평 정도의 대규모이다

 

 

 

 

해미읍성 안내도

 

 

 

 

 

신기 전기화차(神機箭機火車)

조선 시대 문종 1년(1451) 처음 제작되었으며 신기전 100발을

장전한 후 이를 동시 내지는 연속적으로 발사할 수 있는 일종의

다연장 로켓으로 여러 전투에서 큰 전과를 이루었다.

제작 당시의 설계도가 남아 있는 것 중에서 가장 오래된 병기이다.

 

 

 

불랑기(佛狼機)

서양에서 만들어져 중국으로 전해진 서양제 화기로 임진왜란 때

명나라 원군이 가져와 전투에 사용하였다.

여러 개의 포를 연속 사격할 수 있는 매우 발전된 신식 무기이다.

 

 

 

 

  300년 된 회화나무가 한 그루 있는데, 충청도 사투리로 호야나무라고 불린다.

 이 호야나무는 1866년에 병인박해라고 불리는 천주교 박해 사건 때

충청도 각 지에서 잡혀 온 약 1천 명의 신자들이 나뭇가지에 매달려

고문을 당하고 처형까지 당한 슬픈 역사를 간직하고 있다.

 

해미읍성 회화나무는 1790~1880년대에 이곳 옥사에 수감된 천주교 신자들을

끌어내어 이 나무의 동쪽으로 뻗어있던 가지에 철삿줄로 머리채를 매달아

고문하였으며 철삿줄이 박혀있던 흔적이 현재까지도 희미하게 남아 있고

동쪽으로 뻗은 가지는 1940년대에, 가운데 줄기는 1969년 6월 26일에 폭풍으로

부러져 외과수술을 시행하였으나 재차 부패하여 2001년 4월에 외과수술 및

토양개량 등을 거쳐 보호 관리되고 있다네요

 

 

 

 

 

해미읍성은 우리나라의 천주교와 깊은 연관이 있는 곳이다

교도들을 투옥하고 문초하였던 역사적 사실을 바탕으로 터만 남아

있던 옥사를 발굴 작업 뒤 복원, 재현하였다.

1935년에 간행된 「해미 순교자 약사」의 기록을 토대로

복원하였으며 내 옥과 외옥이 있고, 각각 정면 3칸 건물로

남녀의 옥사가 구분되어 있다.

1790년부터 100여 년간 수많은 천주교 신자들을 국사범으로

규정하여 이곳에서 투옥 및 처형을 하였는데 김대건 신부의

증조부도 이곳에서 옥고를 치르고 순교했다고 전해지고 있다.

 

 

 

 

 

 

지금의 교도관 정도 되는가요

 

 

 

 

 

수많은 천주교 신자들의 투옥 장면을 재현하였다

 

 

 

 

 

조선 시대 민가로 말단관리인 서리의 집이다

부엌 1칸, 방 2칸으로 이루어진 전형적인 서산지역의 3칸 초가집이다

자 형의 평면구성은 우리나라 농촌 민가의 가장 일반적인 형식이 되는

공간배치로서 부엌과 방들이 일렬로 연속 배치되어 있다.

모든 방이 남쪽으로 출입구를 두어 쾌적한 생활공간이 되도록

하고 있으며 방에 갖춘 간단한 문구류가 집주인의 직업을 말해준다.

 

 

 

 

해미읍성 외삼문(海美邑城 外三門)

해미읍성의 호서좌영 관아인 동헌으로 들어가는 정문으로

서산 관아문(충남유형문화재 제41호)을 모방하여 복원한

2층 문루 형식이다. 아래층 3칸에 문이 달려 있고

위층에는 정면 3칸·측면 2칸의 누각이 있다.

 

 

 

 

서산시청 정문에 있는 서산관아문(충남유형문화재 제41호)의 실제 모습

바로 위 사진과 비교해 보시지요^^

 

 

 

 

 

조선 시대 서울의 각 관청이나 지방의 행정기관 관원들이 모여

업무를 보던 건물을 모두 아울러 부르는 말이 관아(官衙)이다

지방 관아건축 중에서 실제 지방 행정을 맡았던 관찰사나 군수,

현감 등이 집무하던 건물이다.

 

 

 

 

객사는 지방 관아 중에서도 가장 상징적인 건물로 정청(正廳)에

임금님을 상징하는 전패(殿牌)를 모셔놓고 초하루 보름마다

대궐에 있는 곳을 향해 절하는 향궐망배(向闕望拜)를 향하는

곳이기도 하며 중앙에서 파견된 관리가 머물기도 했다.

 

 

 

 

지성문의 안쪽에서 본 모습

 

 

 

 

서산 해미읍성(瑞山 海美邑城)

충남 서산시 해미면 읍내리 16

 041) 660-254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