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 행/경상도

대구여행/현존하는 관아건축 중 귀중한 선화당, 징청각

윤 중 2012. 5. 21. 05: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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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화당, 징청각

 

조선 시대부터 전국 유일의 한약재시장으로 유명한 

대구약령시 한방축제와 비슬산 참꽃축제

그리고 대구지역의 10미(味) 등 맛집여행을 위한

1박 2일 일정에서 달구별의 중심도로인 중앙로에 있는

조선 선조 때 경상감영의 옛터가

1910~1965년까지 경북도청사로 사용했고

도청이 이사한 이후인 1970년에는 중앙공원으로 조성하였다가

1997년 경상감영공원으로 개칭하였으며

현재는 시민의 휴식처이자 경상감영공원의 옛 흔적을 

함께 돌아보렵니다. 




 경상감영공원의 작은 연못에 비친 홍예교의 반영이 아름답다.

 

 

 

 

 

조국 통일을 기원하는 뜻으로 만들어진 통일의 종은

국채보상운동기념공원 달구벌대종이 만들어지기 전까지

제야의 종 타종식을 거행하였다.

 

 

 

 

 

 

하마비(下馬碑)

이 비는 조선 시대 경상감영의 정문인 관풍루 앞에 서 있던

것으로 말에서 내려 출입하라는 뜻의 표석이다.

 

 

 

 

 

연구산 돌거북 모형

우리 선조가 달구벌에 터를 잡을 때 대구의 진산(鎭山)인 연구산

(제일중학교 자리)에 머리를 남으로, 꼬리를 북으로 돌거북을 만들어 묻어

후손들이 자손만대 안전하고 행복한 삶을 누리게 비방(泌方)하였습니다.

 

이제 달구별의 중심도로인 중앙로를 새롭게 단장하면서 선조의 거룩한

뜻을 다시 한번 되새겨보고 다음 세대를 살아가는 후손들에게도

대구사랑 정신이 면면히 이어지기를 염원하며 실물 크기로

연구산 돌거북 모형을 만들어 여기에 세웁니다.

2009, 12, 5

 

 

 

 

 

 

 

 

 

선화당(宣化堂)

선화당은 경상도 관찰사가 공적인 일을 하던 건물로 원래 안동에 있던 것을 

 조선 선조 34년(1601)에 김신원이 지금의 자리로 옮겼다.

조선 시대 지방행정체제는 전국 8도에 관찰사(감사)를 파견하였으며

선화당은 오늘날의 도청에 해당한다. 


그 뒤 현종 11년(1670), 영조 6년(1730), 순조 6년(1806) 3차례에 걸친 화재로 타버렸다.
 지금의 건물은 순조 7년에 윤광안이 다시 지은 것이다. 

그 후 경상북도 도청으로 사용되다가 1969년 도청이 다른 곳으로 옮겨가자

 1970년 중앙공원을 만들면서 현 모습으로 고치게 되었다. 

조선 시대의 관청건물은 남아있는 것이 많지 않기 때문에 더욱 귀중한 자료이며,

 경상감영의 상징이 되는 건물이라는 데 가치가 있다. 

(대구유형문화재 제1호)  

(문화재청)




 

 

 

 

징청각(澄淸閣)

경상도 관찰사가 살림 채로 쓰던 건물이다.

 조선 선조 34년(1601)에 선화당, 응향당 등 여러 건물과 함께 지었으며 

그 뒤 여러 차례 고쳐 지어 오늘에 이르고 있다.

 앞면 8칸·옆면 4칸으로 넓이가 무려 227㎡나 되며 지붕은 옆면에서 볼 때 

여덟 팔(八)자 모양인 팔작지붕으로 꾸몄다. 

 징청각은 선화당과 함께 대구 시내에 남아있는

 유일한 관아건물로 중요한 문화재이다.

(대구유형문화재 제2호)

(문화재청)





 선화당

대구광역시 중구 포정동 21

(경상감영공원 내)

053) 254-940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