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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남금산여행/나라에 큰 일이 있을때 소리내어 운다는 은행나무와 보석사

윤 중 2012. 6. 9. 05: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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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악산 보석사(眞樂山 寶石寺)

 

진악산 보석사는 신라 헌강왕 12년(886) 때 조구대사가

창건하였다고 전해지며 처음 절을 세울 당시에

절 앞에서 캔 금으로 불상을 만들었기에 보석사라 하였고

 대웅전 건물이 임진왜란 때 소실된 것을 고종 때

명성왕후가 중창해 왕실의 원당으로 지정했다.

 

보석사 입구에 있는 1,000년이 넘는 은행나무는 

마을에 변고가 있거나 나라에 큰일이 있을 때에는

소리 내 울어서 재난에 대비하도록 알려주는

마을의 수호신이기도 하며

 

임진왜란 때 승병을 모집하여 현격한 공을 세운

의병승장 영규대사가 머물던 곳으로도 유명한 사찰이다.

 

 

 

 

 

진악산 보석사의 대웅전(우측)과 기허당 영규대사

 

진영을 봉안한 진영각(좌측)

  

 

 

 

진악산 보석사(眞樂山 寶石寺)

보석사로 들어가려면 맨 먼저 만나는 산문으로서

 

절 이름이 적힌 현판이 걸려있습니다.

 

 

 

 

 

 

 주차장에서 보석사로 들어가는 아름다운 숲길

 

 

 

 

 

 

 

 

 

 

의병승장비(義兵僧將碑)

일본 경찰이 비각을 헐고 자획을 훼손하여 땅에 묻은 것을

광복 후에 다시 세웠다잖아요

일본의 만행을 우리는 절대로 잊어서는 안됩니다. 

 

 

 

 

 

 

 

일주문을 지나서 보석사로 들어가는 걷기에 편한 숲길에는

쭉쭉 뻗은 전나무들이 울창하고 운치 있다.

 

 

 

 

 

 

 

 

 

 

 

 

천 년이 넘은 은행나무가 나라에 큰일이 있을 때에는

소리 내 울음으로써 재난에 대비하도록 알려준다니

얼마나 신통합니까^^

1945년의 광복 때, 1950년의 전란, 1992년의 가뭄 때

소리 내 울었다고 전해옵니다.

(천연기념물 365호) 

 

 

 

 

 

 

 

 

 

 

 

 

 

 

절을 처음 세울 때 절 앞에서 캐낸 금으로 불상을 만들었기 때문에

보석사라는 이름이었으며 당초의 건물은 임진왜란 때 불에 타고

현재의 건물은 조선 후기에 지어졌다 합니다. 

 

 

 

 

 

 

 

 

기허당(驥噓堂)의 영규대사(靈圭大師) 진영을 봉안한 진영각

 

조선 선조 때 고승이며 임진왜란 때 순절한 승병장으로서

임진왜란 당시 왜군을 상대로 싸운 승장은

서산대사와 사명대사 그리고 영규대사를 대표적으로 꼽을 수 있으며

전각안의 중앙에는 영규대사의 진영과

위패가 봉안된 10명의 선사는 허주당 덕진, 응허당 포문, 덕암당 영휘,

무경 대선사, 보봉 대선사, 순화 대선사, 대응당 대선사,

등운당 대선사, 진속쌍융, 보명거사 유천혁이다.

 

 

현판은 추사 김정희 시대의 전주에서 활동한 명필 창암 이상만이 초서로 썼다

 

 

 

 

 

 

 

 

산신각

우리나라에서 고유하게 발달한 토속신인 산신과 산에 사는 영물로

호랑이를 산군으로 모신 곳입니다.

 

 

 

 

 

 

 

 

 

 

 

 

 

 

 

의병승장 영규대사가 머무시던 의선각은 현재 요사채로 사용 중이며

의선각이라는 현판은 창녕위 김병주의 글씨입니다

영규대사도 일본군 때문에 순절하셨지요

전국 곳곳에 이루 헤아릴 수 없는 만행과

원수보다도 더한 일본인의 폭거를 어찌하여 잊겠어요 

 

 

 

 

 

종을 매달아 놓은 범종루

 

 

 

 

 

 

보석사

충남 금산군 남이면 석동리 117

041) 753-152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