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 행/제주도

추사 김정희가 억울한 누명을 쓰고 유배 생활한 제주도

윤 중 2011. 7. 9. 13: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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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사(秋史) 김정희(金正喜)는

시(詩), 서(書), 화(畵)분야에서 독창적이며 뛰어난 업적을 남긴

조선 시대의 대표적인 학자이자 예술가이다

 

헌종 6년(1840) 55세 되던 해에 억울한 누명을 쓰고 제주도로 유배되어

헌종 14년(1848)까지 약 9년간 이곳에서 머물렀다

유배 초기에는 포교 송계순의 집에 머물다가 몇 년 뒤 이곳 강도순의

집으로 옮겨 왔다

 

이곳에서 살면서 제주 지방 유생들에게 학문과 서예를 가르쳤으며

제주 지역의 학문 발전에 크게 이바지하였다

차를 매우 좋아한 김정희는 다도의 대가인 초의 선사와 평생 우정을

나누었으며 제주 지역에 차 문화를 도입한 선구자이기도 하였다

 

이곳에 머무는 동안 김정희는 추사체를 완성하고 생애 최고의

명작으로 손꼽히는 세한도(국보 180호)를 비롯하여 많은 화를 남겼다

이곳은 집터만 남아 경작지로 이용되다가 1984년 강도순의 증손의

고증에 따라 복원되었다

 

2010년 세워진 추사관에는 김정희와 관련된 역사 자료가 전시되어 있다.

(사적 487호)

 

 

 

추사(秋史) 김정희(金正喜)

 

 

 

 

 

대정성지(大靜城址)

대정성지는 조선 태종 18년(1418)에 대정현감 유신이 왜구의 침입을 막고

백성을 보호하기 위해 만든 읍성(邑城)의 터이다

성벽의 둘레는 약 1,614m이고, 높이는 약 5,1m이며 보성, 인성, 안성 일대에 걸쳐 있다

동문, 서문, 남문 세 개의 성문이 세워졌는데 문 위에는 누각이

문 앞에는 돌하르방이 있었다

이곳을 중심으로 관아와 창고 등이 있었고 십여 곳에 봉수대를

설치해 외적의 침입을 알렸다

산과 계곡을 끼고 있는 일반적인 읍성과 달리 이 성은

집과 밭들 사이에 자리 잡고 있다

제주에서 흔히 보이는 현무암으로 쌓아 올린 성벽에서

당시의 축성법을 엿볼 수 있다.

 

 

 

 

 

 

 

 

 

 

 

 

 

 

 

 

 

왼쪽의 건물은 추사 김정희와 관련된 역사 자료가 전시된 추사관이고

오른쪽은 약 9년간 유배생활을 하면서 머물렀던 강도순의 복원된 집

 

 

 

 

 

 

 

 

 

 

 

 

 

 

 

 

 

 

 

 

 

 

 

 

 

 

 

 

 

 

 

 

 

 

 

 

 

 

 

 

 

 

 

 

 

 

 

 

 

 

 

 

 

 

 

 

 

 

 

 

 

 

 

 

 

 

 

 

 

 

 

 

 

 

 

 

 

 

 

 

 

 

 

 

 

 

 

 

 

 

 

 

 

 

우리 일행은 제주렌트카의 덕분에 골목골목의 여러 볼거리를

 시간과 장소의 구애가 없이 자유롭게 보낼 수 있었다.

 

 

 

 

 

추사적거지

제주도 서귀포시 대정읍 안성리 1661-1

064) 760-3406

(관람료 어른 500원, 청소년 어린이 300원)

 

 

 

 

 

 

추천하시는 임은 참 아름답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