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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양주여행/풍수 사상 최고의 명당에서 기를 받을 수 있고 산림욕에 좋은 세계문화유산 광릉

윤 중 2013. 2. 6. 05: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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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네스코 세계유산/문화재답사/남양주여행/조선왕릉 광릉


 

광릉은 조선 제7대 왕인 세조(1417~1468, 재위1455~1468)와 

그의 비 정희왕후(1418~1483)를 모신 곳으로서

 조선 제4대 세종의 둘째 아들인 세조는 형 문종이 왕위에 오른 지

 2년 만에 승하하고, 문종의 아들 단종이 어린 나이에 왕위에 오르자

 단종 즉위 2년(1453)에 계유정난을 일으켜 왕위를 이어받았다.

 

 세조는 1468년 예종에게 왕위를 물려주고

 다음날 52세의 일기로 생을 마감하였다.

 

정희왕후는 1428년 즉위 전 세조와 가례를 올렸으며 

세조에 이어 아들 예종이 왕위를 잇고 이듬해

승하하자 다음으로 왕위에 오른 어린 성종을 도와 

수렴청정을 하였고 1483년 승하하였다.


 

 

세조릉과 정희왕후릉 가운데에 제를 지내는 정자각을 둔

조선왕릉 최초의 동원이강릉이며 잔디 보호를 목적으로

홀, 짝수날을 정해서 관광객은 능까지 오를 수 있다


 


세계유산 조선왕릉은 519년 동안 27대에 걸쳐 조선을 통치한 왕과 비의 무덤이다.

2009년 6월 조선을 통치한 왕과 비의 능 42기 중에 북한에 있는 2기를 제외한 40기가

유네스코 세계유산으로 등재되었다.

유교를 통치 이념으로 삼았던 조선 왕조는 왕릉 조성과 관리에 효와 예를 갖추어

정성을 다하였다. 왕릉을 조성할 때에는 풍수 사상에 따라 최고의 명당을 선정하였고

500년 이상 이어진 한 왕조의 왕릉들이 거의 훼손 없이 온전히 남아 있는 사례는

세계적으로 조선왕릉이 유일하다.


 


조선 왕릉 유일의 하마비가 광릉에만 남아있다

선왕선비를 모시는 제사를 주관하기 위해 친행을 한 왕조차도 이곳

하마비에서부터는 말이나 가마에서 내려야 한다.



능역과 속세를 구분하는 돌다리가 금천교라 하지만 이곳은 시멘트로 만든 거 같더군요



인근의 수목원과 더불어 쭉쭉 뻗은 아름드리 나무들과 울창한 나무에서 내 품는

맑은 공기는 풍수 지리적으로도 기를 풍부하게 받을 수 있다고 알려져서 산책 등

휴식을 겸해서도 많은 사람이 찾는 곳이기도 하지요



2010년 9월 태풍 곤파스의 피해로 100년생인 전나무와 잣나무들을

완전히 썩어 흙으로 되는 기간을 실험하고자 관찰 중이랍니다



곧게 쭉쭉 뼏은 아름드리나무가 무성하여서 산림휴식처로 주목받는 이유이다 



신성한 지역임을 나타내는 홍살문 안으로 산릉제래 때 제사를 지내는 정자각이 보인다



가운데는 제사를 지내는 정자각이고 왼쪽이 세조릉이며 오른쪽은 정희왕후릉이다

하나의 정자각 뒤로 언덕의 다른 줄기에 왕과 비의 봉분과 석물을 각각 만들어 배치한 왕릉은 

조선왕릉 최초의 동원이강릉이다. 좌측의 세조릉은 1468년에 우측의 정희왕후릉은 1483년에 

조성하였으며, 좌측의 세조릉이 정희왕후릉에 비해 약간 높은 곳에 모셔졌다.

봉분이 있는 능상의 아래에 있는 정자각은 1696년(숙종22)에 중건되었다

정자각 오른쪽에는 조선 제21대왕 영조가 1755년 세조의 즉위 300주년을 기념하여

제작한 비를 모신 비각이 있다.


 




정자각 둘레의 벽면에는 몇 개의 총알 자국이 선명하게 박혀있다




제래 때 쓰이는 내부의 모습

광릉 제향 일은 매년 양력 10월 2일이다.



 


왕의 행적을 적은 신도비와 표석




정희왕후릉의 전체 모습

능침을 검소하게 하라는 세조의 유훈에 따라 광릉은 내부에 석실을 만들지 않고, 

능 내부와 관의 사이를 석회로 메워다지는 회격방식으로

 조성하여 소요 비용과 인력을 절약하였다. 

 

또 같은 이유로 봉분 둘레에 돌려세운 네모난 돌인 사대석도 만들지 않았다.

 따라서 기존에 사대석에 새겼던 12지신을

난간석 기둥에 새겨 넣게 되었다. 

 

이러한 회격을 사용하여 능 내부를 조성하는 방식은

세조의 광릉 이후 조선왕릉 조성의 새로운 규제가 되었다.


 



왕을 보좌하는 문관을 상징하는 문석인과

왕을 호위하는 무관을 상징하는 무석인의

조각상이 양쪽에 서 있다.


 



가운데는 어두운 사후 세계를 밝힌다는 석등이고 양쪽에는 

능역임을 표시하는 돌기둥이 서 있다




왕의 혼령이 노닌다는 혼유석



가운데는 왕의 혼령이 노닌다는 직사각형의 돌, 상석의 혼유석으로서

 제사를 지낼 때에는 정자각에서 지내는 이유로 이곳에서는 음식이 차려지지 않는다



봉분과 담장 사이에는 왕릉을 수호하는 호랑이의 석호 조각상과 양 모양의 석양 조각상이 있다



봉분을 둘러싼 울타리 돌기둥과 봉분을 보호하기 위하여

 병풍처럼 둘러놓은 판돌이다



풍수사상에따라 왕릉 뒤편에 운악산을 주산으로 삼고 정남향의 세조릉은 

마주 보는 백령산을 안산으로 삼았으며 남서향의 정희왕후릉은 

천령산을 안산으로 마주하며 경관이 아름답다.


 


수라간 터로서 제사음식을 준비하던 곳이며 현재 건물은

없어지고 그 기초석 일부만 남아 있다.



산릉제래 때 사용한 축문을 태우는 곳으로 예감이라 한다



능침 잔디보호와 관광객 안전을 위해 왕릉과 왕후릉을 격일제로 개방합니다

윤중일행이 방문한 날짜는 짝수일 이어서 왕후릉은 계단으로 올라가서

 사진으로 담았으나 왕릉은 출입하지 못하고 멀리에서 사진을 찍었어요

왕릉과 왕후릉은 외관의 모습이 동일하답니다





광릉

경기도 남양주시 진접읍 광릉수목원로 354

031) 527-710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