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 행/충청도

공주여행/백제의 국력을 신장한 무령왕의 능에서 백제를 본다

윤 중 2012. 3. 4. 05: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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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령왕릉

 

무령왕릉은 삼국시대 왕릉 중에서 유일하게

백제 제25대 무령왕과 왕비가 합장된 주인공이 밝혀진 무덤으로

 

108종 4,600여 점의 부장품을 통해 찬란한 백제문화를 한눈에 확인할 수 있고

무덤의 구조와 출토유물을 통해 백제의 대외교류를 확인할 수 있으며 

 지석에 새겨진 사망연대로 「삼국사기」의 사료적 가치를 높여주고

사망연대와 나이를 통해 부자관계로 알려진 동성왕과 무령왕이

형제관계일 가능성이 높아지는 등

 

이 왕릉의 발견으로 백제문화 및 미술의 높은 수준과

그 확실한 연대를 증명하는 역사적 계기가 되었으며

동아시아사에 찬연히 빛나는 백제문화의 위치를 드높였다.

 

 

 

 

한국풍속문화원은 무령왕릉 잔디밭에서 

무령왕릉에 대한 풍속문화로 조명하고자

"무령 임금 작은 마당"을 학계 및 관계자가 참여한 가운데

열리고 있다.

 

 

 

 

 무령왕(武寧王 :461~523)은 이름이 사마(斯麻) 혹은 융(隆)이고

시호는 무령(武寧)이다

 동성왕이 시해된 501년 40세의 나이로 즉위하여 523년 62세까지

23년간의 재위기간 동안 민생안전과 백제의 국력을 신장하여

국제적 지위를 강화하는 등 대· 외적으로 큰 업적을 이룩했다.

 

 

 

 

1971년 송산리 5호분, 6호분의 배수구를 마련하는 작업 중에

우연히 발견된 무령왕의 무덤은 도굴의 피해를 전혀 입지 않은

상태로 발견되었고 삼국시대 고분 연구에 중요한 정보를 제공한다.

 

 

 

 

 

6호분과 무령왕릉은 같은 벽돌무덤이지만 차이점이 있다.

규모는 무령왕릉이 약 50㎝ 정도 더 크지만 동감의 수는

6호분이 더 많다.

벽화도 6호분에만 있다.

이러한 차이는 무덤을 만든 시기와 관련이 있을 것으로

생각되지만 실제로 두 무점 중 어느 것이 먼저 만들어졌는지는

분명하지 않다.

 

이중연도와 단연도

 

 

오수전 무늬와 연꽃무늬

 

 

 

단독 관대와 전면 관대

 

 

 

등감의 위 창문과 등감의 아래 창문

 

 

 

왕과 왕비 두 분을 합장한 이 무덤은

서쪽에 왕비의 시신을 모셨고 머리는 남쪽으로 두었다.

(공주박물관의 모형)

 

 

 

무령왕과 왕비의 합장무덤은 중국 남조에서 유행하던 벽돌무덤으로

널방은 연꽃무늬를 새긴 벽돌로 쌓았으며 남북길이 4, 2m, 

동서 너비 2, 72m, 높이 2, 93이다.

벽면에는 등잔을 올려놓았던 등감과 창문시설을 설치하였다.

특히 입구에서 출토된 지석은 무덤의 주인공과 무덤을 만든

연대를 말해주고 있다.  

 

 

 

 

 무령왕릉 입구

 고분군 보존상의 문제로 1997년 7월 15일

문화재청의 영구 비공개 결정에 따라

내부 관람이 중지되었습니다.

 

 관람이 폐쇄된 무령왕릉 및 5, 6호분을 정밀하게 재현하여

모형으로 복원한 전시관은 기존의 고분을 1:1 크기로

같게 만들어 관람객에게 역사의 산 체험장으로 제공한다.

 

 

 

 

송산리고분은 웅진 시대 왕족들의 무덤으로서 1~4호분은  

 4기의 백제 굴식 돌방무덤으로 이미 도굴된 상태에서

공주지역의 백제유적 가운데 1927년에 처음으로

조사가 이루어졌다.

조사 당시에는 5기의 무덤이 자리하고 있었으나

현재 4기만이 복원되어 있다.

 

 

 

 

 

 

 

 

무령왕릉

 충남 공주시 관광단지길 34

 041) 856-033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