맛 집/경상도

거창사건 추모공원/양민 집단 학살

윤 중 2021. 10. 4. 05:59

 

거창사건 추모공원

거창 양민 집단 학살

 

 

 

 

 

경남 거창군으로 1박 2일의 일정으로 여행을 다녀오면서

감악산 꽃& 별 여행과 감악산 항노화 웰니스 체험을 비롯한

명승지 수송대와 거창 창포원 등을돌아본 후 오늘 소개는

「1996년 거창사건등 관련자의 명예 회복에 관한 특별조치법」

에 의해 추진된 사업으로서 총부지 162,423㎡(49,133평)

규모의 합동위령사업을 1998년 착공하여 2004년에 준공한

거창 양민학살 사건의 진실을 알아보고자 

거창사건 추모공원을 다녀온 후기입니다.

 

 

 

 

 

 

천유문

이 문은 일상공간과 성역을 구분하는 문이며,

문 안쪽은 억울하게 희생된 영령에 대한 추모

공간이므로 경건한 마음으로 관람하시기

바랍니다.

 

 

거창사건 추모공원

경남 거창군 신원면 신차로 2924(대현리 507)

055-940-8510

 

 

 

 

 

 

거창사건 추모공원 안내도

주차장에 주차를 마친 후 해설사와 동행하면서 

천유문을 통해서 입장하고 위패봉안각 앞을 지나 

위령탑과 희생자묘역을 거친 후 역사교육관 그리고

박산 합동묘역까지 거치면서 해설사의 자세한

해설로 거창사건 추모공원의 가슴 아픈 내용을

알게 되었습니다.  

 

 

 

 

 

 

 

이곳 거창사건 추모공원은 우리나라 현대사에서

가장 비극적인 사건인 6·25 전쟁 중 1951년 2월 9일

에서 11일까지 거창군 신원면에서 일부 국군에 의해

집단적으로 희생당한 양민들의 넋을 위로하고 그들의

명예를 회복하기 위하여 조성된 거창사건 추모공원으로

162,423㎡(49,133평) 규모에 위령탑과 위패봉안각, 

위령 묘지, 역사교육관 등을 만들고 역사적 교훈을

되새겨 보시기 바랍니다.

 

 

 

 

 

 

 

위패 봉안각

거창사건의 승화 공간으로 1951년 2월 9일

청연마을에서 1차로 희생된 84명, 2월 10일 

탄량골에서 2차로 희생된 100명, 2월 11일

박산골에서 3차로 희생된 517명, 그리고

연행 중 희생된 18명 등 신원군 3곳에서

희생당한 719명의 위패를모시고 있습니다.

 

 

 

 

 

 

 

9월 24일 방문하였을적에 넓은 면적에

이제 막 피기 시작한 예쁜 색깔의 꽃입니다.

모두 활짝 만개하면 너무나 아름답겠네요

멀리에는 감악산 풍력발전단지가 보이면서

감악산 정상에는 자동차로 오를 수 있으며

감악산 꽃& 별여행, 항노화 웰니스 체험이

현재 진행 중이랍니다.

 

 

 

 

 

 

위령탑

남자, 여자, 어린이의 무덤을 상징하는 3단의 

돔 사이로 영혼이 부활하여 어둠을 뚫고 하늘로

오름을 상징합니다.

 

 

 

 

 

 

 

 

마을의 주민들이 억울하게 희생된 모습과 함께

일부 군인들이 무릎을 꿇고 참회하는 모습입니다. 

 

 

 

 

 

 

 

일부 군인들이 견벽청야 작전에 따라 평화로운

마을의 주민들이 억울하게 희생되는 과정의

내용입니다.

 

 

 

 

 

 

 

억울하게 희생된 주민들의 묘역

 

 

 

 

 

 

 

일가족 전체가 희생을 당했는가 하면

갓난아이에서부터 남녀노소 구분 없이

무차별적인 희생이었다.

 

 

 

 

 

 

 

거창사건 역사교육관으로 가는 길에

숙연해진 되돌아본 위령탑의 모습입니다.

 

 

 

 

 

 

거창사건 역사교육관

견벽청야, 거창 1950년 9월 28일 서울 수복 이후

국방부는 인민군 패잔병의 합류로 지리산 지구의

빨치산 세력이 확장되자 11사단을 창설하고

1950년 10월 4일부터 1951년 3월 30일까지

견벽청야 작전을 통한 인민군 및 빨지산

토벌을 벌였다.

 

 

 

 

 

 

거창사건 이전의 시대적 상황들을 알아보는 공간

왜? 이러한 비극이 일어 았는가?

거창사건 당시 제11사단 제9연대의 지휘체계.

이동로, 토벌작전, 작전명령 등을 소개 등을 소개합니다.

 

 

 

 

 

 

 

 

박산 합동묘역

719명 중 517명의 희생자가 묻힌 이곳은

사건이 일어난 지 3년 만인 1954년 4, 5~4, 7일

유골을 수습하면서 성별 조차 구분할 수 없어서

큰 뼈는 남자, 중간 뼈는 여자, 작은 뼈는 어린이로

구분하여 합동묘로 조성하였으나  5. 16 정부에서

위령비를 정으로 쪼아 땅에 묻고 개장 명령을

하였던 곳입니다.

 

거창사건 추모공원에 오기도 전에는

충북 영동군에 있는 노근리사건의 현장인

경부선 철도 아래와 터널 등 속칭 쌍굴다리에서

마을 주민들이 미군에 의해 사망, 부상 또는 실종된

인원이 248명 이외에서 이곳 거창사건 추모공원의

더욱 가슴 아픈 내용을 알게 되었습니다.